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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대산인(八大山人) 메추라기

화가 이 승 혜

● 약 력 : 단국대학교 서양학과 및 단국대 교육대학원 미술교육과 졸업

             고미술문화대학 고미술품 감정일반과정 수료

             사) 삼신교재단 한국제례연구원 예술팀장 역임

             명지대학교 사회교육원 입시자문위원 역임

             대한민국 서화대전 입선

             신미술대전 입선

             MBC 금강미술대전 입선

            대한민국 현대미술대전 특선

            대한민국 여성미술대전 동상 및 입선

            부천예술공로상 수상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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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당과 야당의 정쟁(政爭)에 관한 뉴스를 보면 피로감이 상당하다.

민생은 끝을 모르는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는데 민생경제는 등한시하고 내년에 치러질 총선의 승리만을 위해 서로의 험담을 하는 모습은 마주보고 달리는 폭주기관차 같은 느낌이다. 특히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무기한 단식을 두고 여러 추측이 난무하고 이에 대한 정쟁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심정은 답답함을 넘어 정치에 대한 환멸을 느낄 정도라고 해도 무방하다. 서로의 욕심, 탐욕을 위해 진실과 국민의 애환을 외면하는 그들의 욕심과 그들만의 리그를 보며 팔대산인의 암순도(鵪鶉圖: 메추라기) 작품이 떠올랐다. /작가 주

 

팔대산인의 본명은 주탑(朱耷: 1624~1703)이다. 주탑은 명나라의 왕족의 후손이었다. 과거에 급제한 수재였으나, 청나라에 의해 자기가 속한 왕조가 망하는 고통을 겪었다. 청나라와의 전쟁 통에 아버지와 아내를 잃은 주탑은 나이 24살에 출가하였다. 왕족으로서 목숨을 구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승려 전계(傳綮)가 된 주탑은 조동종의 종사 홍민(弘敏)에게 귀의하였다. 30여 년을 산속에서 지냈으며, 깨달음이 깊어 따르는 사람들이 100여 명이 넘었다. 명성을 들은 현령이 회유를 하였으나, 거짓으로 미친 행세를 하며 거절하였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60세에 환속하여, 스스로 호를 팔대산인(八大山人)이라고 하였다. 팔대산인 주탑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에 몰입하였다. 환속한 후에도 세상에서는 그를 승려로 아는 사람이 많았다. 그는 죽기 전에 반야심경을 썼다.

 

아래는 팔대산인의 그림 <암순도(鵪鶉圖)>이다. ​​​암순(鵪鶉: 암은 안으로도 발음한다)은 메추라기를 가리킨다. 그림에는 팔대산인의 친필 화제(畵題)가 적혀있다.

 

​​유월 메추라기는 어디가 집인가?

천진교 위 어린 아이는 교만하도다.

한 냥 돈이 또한 천 금(千金)의 일을 하나니,

봄이 오면 들꽃을 향해 도를 전하리라.

 

​六月鵪鶉何處家(유월암순하처가)

天津橋上小兒誇(천진교상소아과)

一金且作千金事(일금차작천금사)

傳道來春對蔡花(전도내춘대채화)

 

주해)

​천진교(天津橋): 하남성 낙양에 있는 다리. 번화한 거리를 상징한다.

채화(蔡花): 습지나 들에서 자라는 야생의 들꽃​

천금(千金): 십금(十金)으로 읽기도 한다. ​ ​

 

두 마리의 메추라기는 향하는 눈이 서로 다르다. 한 메추라기의 눈은 먹이를 찾는 듯 땅을 항하고, 다른 한 마리는 하늘을 향한다. 먹이를 찾는 메추라기의 눈은 무심하다. 하늘을 보는 메추라기의 눈은 오직 도를 향하는 듯, 초연하다.

메추라기는 먹는 것이 적고, 잠은 아무 데서나 잔다. 평지나 들판 풀속에서 겨울을 난다. 해서 도가에서는 메추라기를 욕심이 적고 소박하게 사는 도가의 인물에 비유한다. 메추라기는 장자(莊子) 천지 편에 나온다. 천지 편에는 요임금이 파수꾼과 만난 이야기를 싣고 있다.

 

       ▲​​팔대산인(八大山人) 암순도(鵪鶉圖: 메추라기)

출처 : GALLERY.NAVER.STORE.COM

 

​ 요임금은 화(華)라는 지방에 갔다가 파수꾼을 만났다. 파수꾼은 요임금에게 오래 살고 부자가 되고 아들을 많이 낳으라고 축수를 했다. 그러나 요임금은 이 모든 것을 사양했다. '이기심을 극복하여 예로 돌아가는 것(극기복례 克己復禮)'이 성인의 길이자, 유학(儒學)의 도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파수꾼은 말했다.

​“처음에 나는 당신을 성인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보니 군자에 지나지 않는군요. 하늘은 사람을 낳으면, 모두에게 합당한 직분을 줍니다. 아들이 많다 해도 그들에게 직분이 주어지는데 무슨 근심이 있겠습니까? 부자가 된다 해도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면 무슨 근심이 되겠습니까?

성인(聖人)이란 메추라기처럼 일정한 거처도 없고, 병아리처럼 적게 먹으며(鶉居而鷇食 순거이구식), 새처럼 날아다니며 행적도 드러내지 않습니다(鳥行而无彰 조행이무창). 천하에 올바른 도가 행해지면 만물과 더불어 번창하지만, 천하에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덕이나 닦으면서 한가히 지냅니다. 이렇게 살면, 몸에는 늘 재앙이 없는데, 무슨 욕된 일이 있겠습니까?”

- <장자> 외편 천지(天地)편

 

잘 알려져 있다시피, 주탑(팔대산인)은 몰락한 명나라 왕족의 후손이다. 해서 혹자는 그림 속의 시를 청나라의 권력층에 대한 울분을 토로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그림이 팔대산인이 69세에 그린 그림임을 생각하면, 도리어 인생을 달관한 뜻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팔대산인의 시를 나름대로 풀어서 읽어본다.

 

유월 여름철 메추라기는 집이 어디 있는가?

화려한 천진교 다리 위의 어린 아이는 교만하구나.

금 한 냥이 도리어 천 금의 큰 일을 하나니,

봄이 오면 들꽃을 향해 도를 전하리라.

 

번화한 천진교 위에 노는 어린 아이는 권력과 부귀을 가진 사람들(또는 청나라 권력층)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부귀를 손에 쥔 그들은 세상을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다고 뽐낸다. 팔대산인은 유월의 메추라기를 보라고 말한다. 집이 어디에 있는가! 팔대산인은 권력과 부귀의 교만을 비판하고 있다.

메추라기는 일정한 거처 없이 들판의 풀 속에서 잔다. 집 없이 사는 메추라기는 몸집은 작아도 그 기상은 당당하다. 메추라기의 삶에는 팔대산인 자신의 뜻이 담겨있다. 팔대산인은 메추라기를 보며, 봄이 오면 이웃에게 도를 전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작은 일이지만, 가장 귀한 일이 아닌가! 팔대산인은 세도가가 그림을 그려달라면 거절했지만, 가난한 이웃이나 어린 아이에게 자기의 그림을 주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림 속 메추라기의 눈은 선사(禪師)와 같이 오직 도를 바라볼 뿐, 세상의 영화에 초연하다.

 

 

아리울신문  jbk1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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