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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력난신(怪力亂神) vs 상덕치인(常德治人)

서 주 원 편집국장

 

"막 까야 한번이라도 쳐다봅니다. 우는 애 젖 주는거 아니겠어요?" 모 지역언론사 대표가 내게 자주 하는 말이다.

 

가십성 기사 등 일단 비판적인 기사가 게재되어야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주목 받을 수 있다는 마케팅 논리다. “일단 까고 보자. 아니면 말고. 사실 여부는 차후 문제다. 제목이 자극적이어야 보게 된다” 등 자극적이고 충동적인 논리로 말하든, 이 어느 한 가지라도 있어야 구독률이 올라갈 수 있다는 나름 대중을 분석하고 있다는 그리고 나름대로 그 분야 전문가의 조언이다. 한마디로 평범하고 정상적인 기사로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없으니 자극적이고 특별함으로 관심을 끌어야 한다는 충고였다.

 

그러고 보니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기사와 시책에 반대 아닌 반대의 주장을 내세우는 기사 등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 정도 되면 괴력난신(怪力亂神) 마케팅으로 자신의 배를 채우고, 권력을 만들고, 카르텔(cartel : 담합)을 만드는 선동가라 할 수 있겠다. 아니 거창하게 말하자면 혹세무민(惑世誣民)이라 할 수 있겠다.

 

공자는 괴력난신을 경계하고 멀리하였다. 공자가 살던 춘추전국시대도 튀어야 팔리던 시대였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정상적이고 평범한 논리는 수요자인 귀족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가 없었다. 당시 왕들과 귀족들은 신들의 이야기와 비약의 논리를 선호하였다. 당대의 백가(百家)들은 온갖 특별하고 신비한 이야기로 유세하여 자신의 이익을 채우려 하였다. 공자 역시 귀족들의 지지를 받아 정치에 참여하여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고 싶었지만, 괴력난신으로 접근하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세상을 속여서(欺世) 이름을 도둑질하지 않겠다(盜名, 도명)'. 비록 14년 동안 유랑의 길을 걸으며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遯世) 고난의 삶을 살았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았던 공자의 선택이 오늘날까지 공자를 있게 한 이유다. 괴력난신으로 이름을 날리고, 왕국을 세우고, 권력을 얻었던 승려, 마술사, 목회자, 차력사, 신비주의자들은 봄날에 녹는 잔설(殘雪)처럼 역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괴력난신에 대항하는 말이 상덕치인(常德治人)이다. 상식(常)은 재미없고, 인격(德)은 평범하고, 질서(治)는 따분하고, 인간(人)은 흔하다. 그래서 괴상(怪)하고, 능력(力)있고, 혼란(亂)하고, 신비(神)한 것에 항상 밀린다.

 

그러나 결과는 시간이 지나면 역전된다. 가장 상식적인 것이 가장 정의로운 것이다. 물은 맛이 없는 무미(無味)의 맛이나 영원히 질리지 않는다. 달콤하고 새콤한 것은 아무리 혀를 유혹하고 마음을 사로잡아도 그때뿐이다. 어머니는 평범했지만 가장 뼛속 깊이 새겨진 인생의 추억이었고, 공기는 흔했지만 생명의 근원이 되어 나를 숨 쉬게 한다. 우리가 당연하고 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드러나지 않는 위대함이고 특별함이다. 하늘에는 솔개가 날고, 연못에는 물고기가 뛰고, 들에는 말이 달리는 것이 상식이다. 그 상식이 자연이고, 자연은 영원하다.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영원한 것이다.

 

언론이라는 이름을 빌려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고, 혼란을 이용해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는 일부 언론인들이 사회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비약은 마약처럼 정도(正道)를 마취시켜 사회를 비정상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괴력난신(怪力亂神)이 상덕치인(常德治人)을 위협하고 있는 시대가 안타깝다. 정론직필(正論直筆)을 되새기며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위대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긴다.

 

데스크 기자  jbk1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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