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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칼럼] 죽음의 힘서인복 법학박사, 칼럼니스트

우리는 가끔 생목숨을 스스로 끊는 자살을 목격하게 된다. 종교에서는 자살을 죄악시 한다. 목숨은 하늘이 주신 것이어서 스스로 자신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종교적인 관점에서 그러는 것으로 보인다.

 

누구나 정상적인 사고가 유지되는 한 죽을 것인가 살 것인가의 선택이 필요하다면 말할 것도 없이 살 것을 선택한다. 죽고 싶을 정도의 어려움에 처해도 살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 본능인 것은 우리가 누구나 공감하는 바이다.

 

구차하게 사는 것보다는 죽음을 통하여 이겨낸 사람을 꼽아 보자면 단연 노무현 대통령일 것이다. 이회창이라는 강적을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은 되었으나 임기의 중반기를 넘기면서부터 여러 악재로 인해 임기 말쯤에는 지지도가 15%까지도 떨어진 걸로 필자는 기억하고 있다. 퇴임 후에 불거진 박연차 사건으로 영부인 권양숙 여사마저 사법처리 될 위기에 몰리자 평생을 승부사의 기질로 살아온 그는 죽음으로 마지막 싸움을 승리로 이끌어 내었다. 만약에 후일을 기약한답시고 그 치욕을 견뎌 내며 살아있었다면 꼴이 어떻게 되었을까. 그가 선택한 죽음이 그를 위대하게 만들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정의당의 노회찬의원의 죽음은 어떤가. 구차하게 살아서 만신창이가 되었을 것은 자명하다. 살아있었다면 죽어있음만 못한 삶이었을 것은 쉽게 짐작이 가는 일이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은 또 어떤가. 그나마 어찌 보면 뇌물수수 등 돈에 대한 범죄보다 훨씬 부끄럽다할 성범죄이니 살아있어서 무엇하겠는가. 성범죄라는 게 알려지면 정말 고개를 들 수 없는 창피한 일이 되고 마는데 더구나 대통령선거 다음으로 큰 선거를 치러서 당선된 그 큰 자리에 있는 사람이 살아있는 송장의 신세를 면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는데 어쩌면 노무현대통령이나 노회찬 의원이나 박원순 시장은 죽음으로 어려운 일을 일거에 해결해버린 승부사로 필자는 보고 있다.

 

요즈음 나훈아가 불러서 온나라가 떠들썩한 “테스형”의 소크라테스는 어떤가. 2500년 전의 그리스의 철학자인 그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로 지금도 유명한데 사실 이 말은 그리스 신전에 소크라테스 전부터 새겨져 있었던 말이라는 설도 있다. 충분히 도망칠 수도 있었다는데 “악법도 법”이라며 독배를 받고 죽음을 택함으로 인하여 그의 위대성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위대한 죽음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의 죽음이 있다.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실 때 “다 이루었다”하신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 죽음은 패배가 아님을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에서 알 수 있다. 필자가 죽음을 예찬하는 건 결코 아니다. 어떤 죽음에는 이렇게 큰 힘이 있으며 위대한 죽음도 있음을 이 가을에 생각해 보는 것이다.

 

@서인복 법학박사, 칼럼니스트

데스크 기자  jbk1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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