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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權力)

1680년(숙종 6) 5월 5일. 숙종은 영의정을 역임하였던 남인의 영수 허적(許積·1610~80)에게 사형을 명령하였다. 이로써 효종과 현종 그리고 숙종을 최고 가까이에서 모시던 허적은 천하의 역적으로 생명을 마쳤다.
부왕 현종(顯宗)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14살에 조선의 국왕이 된 숙종은 남인 세력을 중용하였다. 현종이 송시열을 중심으로 하는 서인 세력에게 눌려 자신의 왕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것을 보며 자랐던 그는 어린 나이였음에도 서인을 밀어내고 남인 허적을 영의정에 임명하는 결단을 내렸다. 숙종은 자신의 권력기반이 확고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서인이 아닌 남인의 도움을 받으며 국정을 운영하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허적과 남인 세력들은 숙종에게 부담스러운 존재로 변하기 시작했다. 허적의 추천으로 새로 조정에 들어온 윤휴와 훈련대장 유혁연은 북벌(北伐)을 부르짖었다. 청나라 내부에서 오삼계(吳三桂)라는 한족(漢族) 출신의 장군이 내란을 일으켜 혼란에 빠진 틈을 타서 요동을 정벌하자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이들은 북벌을 내세우며 군사력을 장악하려고 하였다. 처음 이들의 의견을 좇아가던 숙종은 오삼계의 난이 종료되면서 더 이상 청나라를 공격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마음을 바꾸기로 하였다. 권력의 교체를 단행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1680년 3월 30일 뜻밖의 상황이 왔다. 영의정 허적 집안의 잔치에 비를 막는 기름먹인 천막을 숙종의 허락없이 궁중에서 가져다 썼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숙종은 자신을 능멸한다고 판단하고 이들을 제거하기로 하였다.
숙종의 결단은 단호했다. 14살에 왕이 되어 이들에게 의지하여 국왕의 지위를 유지하였으나 20살의 국왕에게 이들은 오히려 해가 되는 존재였다. 숙종은 허적이 자신의 당숙인 복선군(福善君)을 왕위에 앉히려고 역모를 꾸몄다며 탄핵하고 사형시키는 교지를 내렸다. "과인이 비록 사리에 어둡고 용렬하나 칼자루를 남에게 쥐어 주어 위에서는 임금의 형세가 위태롭고 밑에서는 당파가 더욱 치성하게 되도록 하지는 않으리라!" 자신을 도와준 영의정과 당숙까지 죽인 숙종은 남인 신하들을 누르고 서인들을 등용하면서 절대 왕권을 갖게 되었지만 당쟁은 더욱 극대화되었다.
조선시대 역사에서 국왕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허위 역모 사살을 조작하고 사람들을 죽인 사례는 너무도 흔하다. 하다못해 인조는 소현세자를, 영조는 사도세자를 죽이기까지 하였다. 왕세자도 죽이고 권력을 유지하려는 국왕들에게 신하들이야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이만큼 권력은 무서운 마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절대 권력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권력을 사적 이익을 위해 쓰면 국가와 백성은 도탄에 빠지고 만다.
지난 1월과 2월. 정읍, 부안, 고창 각 행정에서 조직개편 및 인사이동을 실시했다. 거의 모든 인사(人事) 후 잡음이 일기 마련이다. 조직원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인사는 없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 인사는 작년 민선 7기 취임 이후 실질적인 업무 추진을 위한 단체장의 복심(腹心)이 들어간 인사이기 때문에 더욱 잡음이 심한 실정이다.
조직개편 및 인사와 관련해서 여러 풍문이 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풍문이 말 그대로 풍문으로 끝나기 위해서는 풍문의 대상자들이 더욱 공명정대하고 열심히 업무에 충실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풍문의 근원지인 단체장 역시 인사권(人事權)이라는 막강한 힘을 개인적인 호불호(好不好) 및 선거 관련 은혜 갚기의 도구로 써서는 안된다.
권력을 남용하면 그 권력의 칼 끝은 결국 자기 자신을 향하게 된다.

서주원  jbk1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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