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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시내 본정통 죽어가나.

필자와 정읍의 인연은 여러번 이 칼럼에서 이야기를 했었다. 더불어 우리 신문이 부안에서  시련을 겪을 때 정읍으로 본사를 옮기고 4년여를 지내면서 배포지역을 부안에서 정읍, 부안, 고창으로 늘리면서 정읍과 신문으로 인연을 맺은지도 어언 15년여가 다되었다. 고등학교를 정읍에서 다닌 인연도 인연이었지만 필자의 고향이며 지금도 살고 있는 줄포는 정읍생활권이었으므로 정말이지 정읍은 필자에게는 많이 익숙한 도시이고 그런 연유로 자주 가는곳이고 신문의 취재를 위해서도 자주 가게 된다.

이글의 제목으로 쓴 본정통이라는 말은 일제때 쓰던 용어로 알고 있다. 막상 다른 용어로 바꿔 쓰려하니 마땅한 쓸 말이 생각 나지 않아 부득이 그냥 쓰게 됨을 독자제현님들의 양해를 부탁드리는바이다.

정읍의 본정통이라고 필자가 말하는 곳은 정읍우체국 이 있는 구 의류상가를 지칭하는데 지금은 우체국의 뒷길로 보이는곳이고 나중에 개설된 우체국의 앞길은 4차선의 길에 접해있어 매우 화려하고 고층건물이 즐비한곳이어서인지 결국 본정통은 그에 비해 많이 초라해진 느낌이다. 한때 강광 시장의 재임시절에는 그곳을 물의거리라고 하여 실개천 같은 물을 인공적으로 흐르게도 해보았으나 별로 상권은 살아나지 않았고 오히려 불편만 초래하여 다시 원상으로 회복하여 버렸는데 그곳을 일방통행로로 만들면서 급속히 쇠락의 길을 걷게 된 것으로 필자는 이해하고 있다.

그 본정통에서 농고쪽으로 가는길에는 정읍극장이 있었었고 정읍역쪽으로는 성림극장이 있어서 영화를 보러도 자주 갔던 추억이 필자에게는 남아 있다 정읍농고를 다닐때 필자는 불량학생이었던 것으로 필자는 스스로 인정하는데 줄포에서 통학을 하다가 정읍에서 하숙을 하다가 했었다. 통학을 할 때는 줄포에서 늦은 버스를 타고 가서는 지금의 세무서자리에 있는 법원에서 재판을 구경하다가 한 시간이 끝나서야 학교에 들어가곤 했는데 그런 일도 추억이라면 추억이라는 생각이 든다.

본정통의 가게중에는 지금의 갤럭시 양복을 파는 곳이 있는데 필자가 어렸을 적 초등학교 시절에는 태평양복점이었던 것으로 필자는 기억하고 있다. 필자의 아버님이 어느해인가 정월 초사흩날에 필자를 데리고 그곳에 아버님의 양복을 맞추러 가셨다. 아마 아버님은 줄포의 양복점보다는 좀 좋은 소재의 양복을 저렴한 가격에 맞출수 있을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가신 것 같은데 줄포보다는 높은 가격인지라 많이 망설이시는데 아버님은 자신이 정월 초사흘의 첫 손님이라서 한 푼도 깎아주지 않는대도 어쩔 수 없이 그냥 맞추고 나오시는 민망한 모습을 어린 마음에도 알 수 있었다. 필자의 아버님은 마음이 참 여리신분이었다. 아마 정초이고 오전의 첫손님이어서 재수 없다는 욕을 먹을까봐 그냥 나오시지 못하신것 같았다. 벌써 60여년전의 얘기니 까마득한 옛일이다.

그본정통에서 구시장으로 가는 길에 있는 자전거판매점도 참 오래된 가게이다. 삼천리자전거든가 그러는데 1978년으로 기억하는데 그곳에서 혼다 오토바이를 36만원에 사서 소성면까지 자동차로 실어다 달라고 하여 면허도 없는 내가 줄포까지 타고 온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런 추억들이 있는 본정통을 보면 마음이 좀 짠하다. 임대한다고 붙어 있는 빈 가게가 적지 않고  잘 되는 곳이 별로 없는 것 같이 보이는데 마치 하릴없이 늙어가는 필자의 모습같다. 이전의 김생기 시장 시절부터 이곳은 방치 되어 있었던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 지금의 유진섭 시장도 그러는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좀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데 사실 까놓고 얘기 하자면 필자는 정읍시의 현재의 경제상태를 보여주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유진섭 시장의 정읍이 출범한지도 벌써 8개월이 지나간다. 4년 임기의 6분의1이 훌쩍 지난가는건데 지금까지는 여기에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걸로 보이는데 어쩌면 슬럼화 되는 것으로도 보일 수 있는 이곳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건 아닐까 하는 염려와 애정을 표시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 옛날의 중심지로서의 모습까지는 아니더라도 추하게 쇠락해져 갈 수도 있는 모습은 유진섭 시장이 막아주어야 한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100년 가게라는 혜화당 한약방이 지금도 있는 이 유서 깊은 이곳 을 말이다.

데스크 기자  jbk1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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